아시안게임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연주…한국 하키 5-0 승리보다 남은 질문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나갔어요. 42.195킬로미터를 2시간 29분 19초 만에 달려서, 당시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어요.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지요. 그런데 이 기쁜 순간에는 말 못 할 아픔이 숨어 있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었어요.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손기정 선수는 어쩔 수 없이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나가야 했어요.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니라 일본 국기를 달아야 했고요. 시상대에 올라 일본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손기정 선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이 소식을 들은 국내 신문사들은 가만있지 않았어요. 조선중앙일보라는 신문사의 유해봉이라는 기자는,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가슴에 달린 일본 국기를 몰래 지우고 신문에 실었어요. 1936년 8월 13일의 일이었어요. 12일 뒤에는 동아일보도 똑같은 일을 했어요. 기자들이 사진을 인쇄판으로 만들 때 화학약품을 써서 일본 국기 부분을 없앤 거예요. 지금처럼 컴퓨터로 쉽게 지우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나하나 지워낸 거라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 일은 당시 일본 정부를 크게 화나게 했어요. 두 신문은 큰 벌을 받았어요. 동아일보는 신문을 낼 수 없게 됐다가(이를 ‘정간’이라고 해요) 279일 만에 다시 신문을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조선중앙일보는 달랐어요. 신문을 다시 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 조건이 “일본 편을 드는 사람을 새 사장으로 앉혀라”라는 것이었어요. 조선중앙일보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다시는 신문을 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어요. 사진 한 장을 지운 대가로, 신문사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에요.
손기정 선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우리나라 체육을 위해 일했어요. 선수를 가르치는 감독이 되기도 하고, 체육 단체의 높은 자리에서 후배들을 이끌기도 했지요. 그리고 198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울 올림픽이 열렸어요. 이 개회식에서 손기정 선수는 성화(올림픽 불꽃)를 들고 달리는 마지막 주자 중 한 명으로 나섰어요. 52년 전, 남의 나라 국기를 달고 눈물 흘렸던 그 청년이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불꽃을 직접 들고 달린 거예요. 이 장면을 본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도 그날을 뭉클하게 기억하고 계세요.
손기정 선수는 2002년, 아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학교에서, 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이렇게 블로그 글에서도 계속 전해지고 있어요.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슬픈 일’로 끝나지 않아요. 스포츠 경기 하나가 그 시대 사람들의 자존심과 아픔, 그리고 이를 지키려는 용기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거든요. 신문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사진 속 국기 하나를 지운 것도, 손기정 선수가 훗날 다시 성화를 든 것도, 모두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스포츠와 문화가 만나는 자리에는 이렇게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앞으로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보실 때, 손기정 선수와 그날의 사진 한 장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