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연주…한국 하키 5-0 승리보다 남은 질문
양정모 선수의 종목은 레슬링 자유형 62킬로그램급이었어요. 그때 레슬링 경기 방식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어요. 여러 선수가 돌아가며 겨루고, 진 경기에서 받은 벌점이 가장 적은 선수가 우승하는 방식이었지요. 양정모 선수는 사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상대에게 졌어요. 하지만 그때까지 쌓인 벌점이 다른 선수들보다 적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1위, 즉 금메달을 차지했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우승할지 알 수 없었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어요.
사실 우리나라 선수가 올림픽에서 처음 금메달을 딴 건 이때가 아니에요.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먼저 금메달을 딴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라, 손기정 선수는 어쩔 수 없이 일본 대표로 뛰어야 했어요. 태극기가 아니라 일본 국기를 달고서요.
그래서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이 더 특별해요.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딴 올림픽 금메달이거든요.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진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40년 전 손기정 선수가 흘렸던 눈물이,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로 바뀐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경기를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어요. 많은 국민이 라디오나 신문을 통해 이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졌고, 사람들은 “드디어 우리 힘으로, 우리 이름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는 벅찬 마음을 함께 나눴답니다.
양정모 선수는 은퇴한 뒤에도 레슬링을 떠나지 않았어요. 한국조폐공사라는 곳의 레슬링 팀에서 감독을 맡아, 후배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자신이 걸었던 길을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주고 싶었던 거예요. 지금도 그의 고향인 부산에는 그의 이름을 딴 훈련장이 있어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기억하고 있답니다.
양정모 선수의 이야기는 스포츠 경기 하나가 한 나라의 역사에 얼마나 큰 의미를 남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줘요. 벌점 몇 점 차이로 갈린 그날의 경기 결과가,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이름과 국기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선 첫 순간이 됐으니까요. 올림픽 중계를 보시다가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시면, 그 시작에 있었던 양정모 선수를 한번 떠올려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