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연주…한국 하키 5-0 승리보다 남은 질문
"오 필승 코리아"의 멜로디는 원래 한국에서 만든 곡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축구 팬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불리던 응원가 스타일의 멜로디가 원형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멜로디가 1990년대 국내 K리그 서포터들 사이에 전해지면서, 국내 축구팬들이 이 곡조에 자신들만의 응원 가사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즉, 처음부터 '국가대표 응원가'로 태어난 게 아니라 축구장 관중석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노래였던 셈이에요. 스포츠 응원가가 대부분 그렇듯, 특정 작곡가가 앉아서 만들었다기보다 팬들의 목소리를 거치며 조금씩 완성된 곡에 가깝습니다.
이 멜로디가 국가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에게 넘어오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오 필승 코리아"의 가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붉은악마를 만든 사람들 중 상당수가 K리그 서포터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익숙하게 불러온 이 응원가를 국가대표 경기장으로 자연스럽게 가져올 수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보면 "오 필승 코리아"는 유럽 축구 문화 → 한국 K리그 서포터 문화 → 국가대표 응원 문화로 이어지는, 스포츠 응원 문화가 국경을 넘어 전해지고 변형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습니다. 윤도현밴드(YB)가 부른 버전이 붉은악마의 공식 응원가처럼 자리 잡으면서, 경기장은 물론 시청 앞 광장, 동네 치킨집, 학교 운동장까지 이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특별히 노래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오~ 필승 코리아"만큼은 따라 부를 수 있었을 정도였어요.
이 노래의 인기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거리 응원 문화였습니다.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광장에 모여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응원하는 모습은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는데요, 이때를 계기로 '다 함께 모여 응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축제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Be the Reds"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는 당시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기도 했죠.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한 방송에서 윤도현 본인이 직접 "이 노래는 애초에 한 통신사의 광고 음악으로 만들어진 곡이라, 나에게 저작권이 없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국민 대부분이 '윤도현의 노래'로 기억하는 곡이지만, 정작 법적인 권리는 다른 곳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윤도현은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어차피 이 노래는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노래"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스포츠 응원가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고 공유하는 문화라는 점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입니다.이 이야기를 조금 더 넓혀보면 재미있는 지점이 하나 보입니다. 축구장에서 수만 명이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과, K-POP 콘서트에서 팬들이 노래 가사를 한 소절도 놓치지 않고 따라 부르는 '떼창' 문화는 형식적으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결국 스포츠 응원가든 콘서트 떼창이든,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은 같다는 걸 보여줍니다. 종목은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문화적 본능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죠.
"오 필승 코리아"는 2002년 이후로도 계속 변주되며 이어져 왔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밴드 버즈가 새로운 버전을 녹음해 다시 한 번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도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릴 때면 여전히 이 곡이 경기장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옵니다. 하나의 응원가가 이렇게 오랜 시간 세대를 넘어 불리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요, 그만큼 이 노래가 한국 스포츠 문화에 남긴 흔적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 필승 코리아" 하나를 따라가 보니, 유럽 축구장의 멜로디가 한국 K리그를 거쳐 국가대표 응원가가 되고, 국민가요가 되었다가, 다시 저작권 논란이라는 반전까지 품게 된 흥미로운 여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와 문화는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어요. 스포츠&컬쳐 스토리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스포츠와 문화가 만나는 순간들을 계속 찾아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