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연주…한국 하키 5-0 승리보다 남은 질문
같은 월드컵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오늘은 ‘오 필승 코리아’와 붉은악마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응원 문화가 어떻게 시작됐고 왜 변했는지 쉽게 풀어드릴게요.
많은 분들이 ‘오 필승 코리아’를 순수 우리나라 노래로 알고 계세요. 그런데 사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원래 유럽 축구팀을 응원할 때 부르던 노래였어요. 1996년 즈음, 케이블 방송에서 스페인 축구 경기를 중계할 때 이 멜로디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고 해요.
그 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프로축구(K리그)에도 응원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 부천에 있던 한 축구팀의 서포터즈 모임(이름은 ‘헤르메스’였어요)이 이 외국 멜로디에 우리말 가사를 붙였답니다. 그렇게 ‘오 필승 코리아’가 태어났어요. 처음에는 그냥 한 축구팀을 응원하는 노래였는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붉은악마의 공식 응원가로 정해졌고, 가수 윤도현 밴드가 부른 버전이 널리 퍼지면서 온 국민이 아는 노래가 됐어요.
붉은악마는 1996년에서 1997년 사이에 만들어졌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PC통신’이라는 컴퓨터 통신망에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PC통신에서 축구 동호회를 만든 게 붉은악마의 시작이었지요.
처음에는 이름이 달랐는데, 1997년에 ‘붉은악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이 이름에는 특별한 뜻이 있어요.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어린 선수들이 세계 4강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그때 외국 언론이 우리 선수들의 강한 힘을 보고 ‘붉은악마’라고 불렀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같은 이름을 붙인 거예요.
붉은악마 하면 떠오르는 게 빨간 티셔츠와 도깨비 얼굴 그림이지요. 빨간색은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기본 색깔로 자리 잡았어요. 도깨비 얼굴 로고는 아무렇게나 그린 게 아니에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기와에 새겨진 도깨비 무늬(귀신 얼굴 모양이에요)에서 따온 거예요. 우리 옛 조상의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구호도 사실 원래는 수원의 한 축구팀 서포터즈가 “수~원삼성!” 하고 외치던 구호였어요. 이걸 나라 이름으로 바꿔서 온 국민이 함께 외치는 구호로 만든 거예요.
붉은악마와 ‘오 필승 코리아’가 가장 크게 빛난 순간은 2002년 6월 14일이었어요. 이날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올라갔어요. 그날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만 47만 명, 광화문 일대에 45만 명이 모였어요. 서울 시내 13곳을 다 합치면 142만 명이 넘었고요. 부산, 인천, 울산, 제주까지 전국을 다 합치면 그날 하루에만 27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함께 응원했답니다. 당시 신문은 이날을 “5,000년 역사상 가장 기쁜 날”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예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요즘은 경기를 보는 방법이 아주 다양해졌어요. 예전에는 텔레비전 채널이 몇 개 없어서 다들 같은 방송, 같은 시간에 경기를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텔레비전, 인터넷 중계, 유튜브, 짧은 영상(쇼츠)까지 보는 방법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 함께 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힘이 예전보다 약해졌어요.
둘째, 예전에는 방송사 여러 곳이 동시에 중계를 해서 어디를 틀어도 같은 경기를 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중계권이 나뉘면서 그런 상황이 아니게 됐어요. 셋째, 몇 년 사이 축구협회를 둘러싼 여러 논란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이 팬들의 마음을 조금씩 식게 만들었다고 해요.
대신 새로운 모습도 생겼어요. 요즘은 케이팝 스타들이 월드컵 개막식이나 주요 행사 무대에 직접 오르면서, 응원가보다는 화려한 공연으로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오 필승 코리아’와 붉은악마 이야기를 돌아보면, 응원 문화도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함께 만들어지고 변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002년에는 온 국민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소리치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어요. 2026년 지금은 각자 편한 방법으로 응원을 즐기는 시대가 됐고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확실한 건, 20여 년 전 그 여름의 함성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뜨겁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