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연주…한국 하키 5-0 승리보다 남은 질문
김연아 선수는 1996년, 일곱 살 때 경기도 과천에 있는 실내 빙상장에 놀러 갔다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어봤어요. 그 뒤 한 코치 선생님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재능은 금방 드러났어요. 겨우 열네 살이던 2003년, 김연아 선수는 벌써 국가대표로 뽑혔어요.
김연아 선수의 이름을 온 국민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알린 건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었어요. 쇼트프로그램에서 78.50점, 프리스케이팅에서 150.06점을 받아 합계 228.56점을 기록했어요. 이 점수는 모두 세계 신기록이었어요. 이 경기로 김연아 선수는 우리나라 선수 중 처음으로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땄어요.
이날 연기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온 음악들을 모아 연기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곡에 맞춰 얼음을 갈랐어요. 스포츠 경기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음악과 춤 공연처럼 느껴진다는 평이 많았어요. 그날 얼음판 위의 연기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처럼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답니다.
김연아 선수는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났어요. 그런데 은퇴한 뒤에도 인기는 식지 않았어요. ‘올댓스케이트’라는 아이스쇼에 여러 해 동안 출연하면서 팬들과 계속 만났고, 광고와 방송에서도 꾸준히 활약했어요. 운동선수가 은퇴한 뒤에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김연아 선수는 이제 스포츠 선수라는 틀을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2018년, 우리나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어요. 이 개회식에서 성화(올림픽 불꽃)에 마지막으로 불을 붙이는 사람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김연아 선수였어요. 하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우리나라 전통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전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선수로 뛰던 시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김연아 선수는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답니다.
김연아 선수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메달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가 활약한 뒤로, 스포츠 신문에는 ‘김연아 키즈’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김연아 선수를 보고 자라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어린 선수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예전에는 피겨스케이팅이 우리나라에서 낯선 운동이었는데, 김연아 선수 이후로 이 종목을 배우려는 어린이들이 크게 늘었어요. 한 사람의 활약이 스포츠 하나의 저변을 통째로 넓힌 셈이지요.
김연아 선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운동 실력만으로 사랑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얼음 위에서 보여준 우아한 움직임은 예술처럼 여겨졌고, 큰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자신감을 함께 안겨줬어요. 이렇게 한 선수가 자기 종목을 넘어 온 국민이 사랑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는 것, 이것 역시 스포츠와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멋진 이야기 중 하나랍니다.